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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 남이장군 행렬모습 숙명여대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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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숙대앞을 지나가다 우연하게 남이장군 사당제날이지 몰랐다.

행렬이 지나가는 동안 잠시나마 역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시간을 갖게 하는것 같다.

남이장군 사당제는 시무형문화재 제20호로 되었 있다고 합니다.

남이장군 행렬 모습입니다.

 

남이장군님의 나라를 사랑하는마음은 정직함이 나라를 위해 20대의 기백으로 적의 추장 이만주를 남이장군께서 없애으며, 그때 그시절 얼마나 많은 조종에 간신배가 많았으면 정직한 패기 넘치는 남이장군을 모함을 하여서 반역죄로 단죄 한것은 우리의 역사에 남았습니다.

남이장군과 함께 나가는 출전하는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역사에 이르기를 남이장군이 용산에서 병사를 몇백명을 모집한 근거가 있다고 한다.

용산에서는 남이장군 사당제 행사를 매년 지내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때가 오늘인것 같아 보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역사의 교훈을 가르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나가는 병사들의 행렬입니다.

이동방향이 남이장군 사당에서 숙명여대 (지금 이자리는 숙명여대를 지나가는 모습입니다.) 

 

조선시대 남이장군20대 젊은 혈기에 정직함과나라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달랐다. 세조의 총애를 한눈에 받은 남이장군은 많은 전장의 공을 세우고 무신으로써 책무를 다하였으며,큰 벼슬까지 받으셨다고 합니다.

농악과함께

젊은 나이에 역모에 몰려 세상을 등지시고 이후에 현재 남이장군 사당이 용산구에 만들어진것이 벌써 300년전 이라고 합니다. 너무 몰랐던 역사관을 다시 배우게 되는 남이장군님을 다시 알게 되어 많은 교훈을 남겨줍니다.

남이장군의 슬픈시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다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다 먹여 없애네 사나이 스무살에 나라 평정하게 못한다면 후세에 그 누가 대부라 이르리오(1441~1468)

간신 유자광으로 부터 시조를 핑게 삼아 역적으로 내몰아 젊은 나이에 역모죄로 처형을 다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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